제43회 콜로키움 후기
:「평화군축을 통한 여성복지: 여성평화운동과 1990년대 방위비삭감운동」
지난 3월 27일에 열린 43회 콜로키움은 김태경(성공회대)의 발표와 이지연(연세대), 조영주(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토론 그리고 강인화(강원대)의 사회를 중심으로, 냉전 이후 ‘평화배당금’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고 군사화가 재강화되는 현재의 국제정세 속에서 1990년대 한국 여성평화운동을 바라보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패널들은 방위비삭감운동을 통해 평화와 복지를 연결하려 했던 시도를 검토하며, 그 현재적 함의를 탐색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김태경은 유럽과 달리 한반도에서는 실질적 평화배당금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음을 지적하며, 오히려 군사비 지출과 안보 중심 국가운영이 지속되어 왔음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맥락 속 1990년대 여성평화운동은 방위비를 삭감하여 여성복지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을 통해, 평화를 군사적 안정이 아닌 인간의 생존과 일상에 기반한 ‘인간안보’의 문제로 재정의하였다고 주장한다. 즉 방위비삭감운동은 국가 중심 안보담론에 대한 비판이자 젠더화된 권력구조를 드러내는 시도로 평가된다. 기독교 여성운동을 기반으로 형성된 방위비삭감운동은 원폭피해자 운동, 반전평화운동 등과 결합하며 핵과 전쟁의 ‘인간적’ 측면을 부각시켰다. 동시에 ‘대포냐 버터냐’라는 문제설정을 통해 군사비와 복지의 관계를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시키며, 궁극적으로 여성복지를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조명하였다. 그러나 1994년 이후 전략적 전환을 겪으며 ‘여성복지’라는 구체적 의제는 후퇴되고, 인간안보 및 평화군축이라는 보다 포괄적인 담론으로 이동한다. 대중적 연대를 확대하려는 이 시도는 오히려 여성운동 고유의 문제의식과 동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평가된다.
이지연은 안보·경제발전·복지 담론이 결합된 한국 사회에서 방위비삭감운동을 단순한 군축 요구 이상의 여성 노동권, 생존권, 재생산권을 포함하는 시민권 요구로 접근하여, 가부장적 국가 발전과 냉전 안보 담론 속에서 해당 운동이 가졌던 의미를 재조명하였다. 젠더화된 시민권 연구자로서 반갑고 공감되는 해석이었으며, 군축 요구를 넘은 다른 여성 운동에서 같은 요구가 어떻게 계승되는지 궁금해지는 지점이기도 하였다. 조영주는 방위비삭감운동을 여성평화운동사 속에서 어떻게 위치 지을 것인지에 대한 이론적 과제를 제기하였다. 특히 왜 여성이 평화운동의 주체여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 그리고 ‘복지’ 개념이 내포하는 의미를 보다 촘촘히 해석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90년대 당시 운동이 요구하던 ‘복지’는 단순한 사회보장 지출이 아닌 광의의 시민권 개념이었으므로, 당시의 언어적 맥락을 고려할 필요가 비판적으로 논의되었다.
이러한 토론을 통해 본 콜로키움은 여성평화운동의 성과뿐 아니라 한계 또한 드러내는 자리이기도 했다. 연대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패널들은 젠더 의제가 탈각되는 문제, 진보운동 내부의 권력관계 속에서 여성운동이 주변화되는 양상, 그리고 피해자 담론을 넘어서는 주체성 구성의 어려움 등을 지적했다. 나아가 국제적으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국내 방위산업이 확대되는 현 시점에, 방위비삭감운동과 같은 평화운동이 어떤 방식으로 재구성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그럼에도 본 발표의 의의는 ‘실현되지 못한 과거의 가능성’을 현재의 자원으로 재소환했다는 점에 있다. ‘대포와 버터’가 동시에 강화되는 현실 속에서도, 1990년대 여성평화운동은 평화와 복지를 연결하려는 대안적 상상력이 분명히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단일한 미래가 아닌 복수의 ‘규범적 미래’를 사유할 필요성을 환기시키며, 평화를 ‘누가,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다시 제기한다. 그러므로 본 콜로키움은 방위비삭감운동 사례를 통해 한국 사회의 안보·복지·젠더 문제를 교차적으로 조명하며, 과거 운동의 경험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성찰할 수 있는 학술적 기회를 제공하는 자리였다.
김하령 | 토론토대학교 사회학과 박사후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