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에서 인프라는 익숙하지만 낯선 대상이다. 고등학교 통합사회 교과에는 분명 ‘사회기반시설’이 나온다. 그런데 학계에서는 다르다. 국가, 정부, 회사, 사회운동조직 등을 연구대상으로 삼은 경우는 많지만, 사회기반시설을 연구대상으로 삼은 연구자를 찾기란 무척 어렵다. 요사이 마법처럼 ‘인프라스트럭처’가 연구대상이자 연구방법으로 나타났고 각광받고 있다. 사회학뿐만 아니라 인류학과 과학기술학(STS), 경제학, 역사학, 민속학, 문화연구 등 여기에 휘말리는 분과학문도 다양하다. 그러나 인프라스트럭처가 아예 새롭다고 하기는 어렵다. 역사학이나 물질연구에서는 이미 꽤 오래 연구된 분야다. 예컨대 상수도나 하수도 등 도시기반시설의 경우는 도시의 형성사와 위생 관념의 변천을 설명하는 재료로 오랫동안 다뤄졌다.
세미나 초반 우리는 사회과학에서의 인프라스트럭처 연구는 무엇이 달라진 건지, 아니 왜 필요한지 의견을 나눴다. 아무래도 연구자들이 구조와 행위자라는 실질적으로 이분화된 한계 앞에서 인프라스트럭처를 드러냄으로써 조정할 가능성을 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졌다. 예컨대 이혁진의 소설 『누운 배』를 보면 그 시작이 이렇다. “배가 쓰러지니 어서 회사로 들어오라는 팀장의 전화를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쓰러졌으니 회사가 무사할 리 없었다”고 이어간다. 이 내용은 사회과학에서의 인프라 연구 방향을 이해하기 좋은 실마리다. 기존의 연구라면, 산업만 보거나 노동자의 현실만 보았을 텐데, 인프라스트럭처 연구라면 이것들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그 연쇄를 좇을 것이다. 쓰러진 배는 한 척의 사물이지만, 그 배에 매달린 회사가 있고, 나아가 노동자와 도시가 있다. 또 거대한 전지구적 물류망에도 적잖은 영향이 있다. 배 한 척의 고장은 산업과 지역과 삶을 연쇄적으로 넘어뜨린다. 인프라를 본다는 건 이 다양한 스케일의 연쇄를 좇는 일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세미나에서 거듭 확인한 것은 두 가지다. 인프라는 완벽하게 작동하는 법이 없어 늘 고장과 수리, 유지와 보수를 동반한다. 또 고장은 한순간의 사건이 아니라 형성과 유지, 방치 등 시간이 쌓인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니 인프라를 본다는 건 현재의 사태만이 아니라 그 사물과 관계에 쌓인 시간을 읽어내는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비판적 사회학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인프라스트럭처를 연구대상이자 연구방법으로 벼려보고자 한다. 어쩌다보니 무언가 고장나거나 고장났다고 여겨지는 인프라스트럭처 속 조직과 사람들을 만나고 살피는 연구자들이 모였다. 사회학 연구자 김성윤과 소준철, 미디어플랫폼 연구자 김소형, 민속학 연구자 이민재, 기술문화 연구자 최혁규, 도시계획학 연구자 한승지 등이다. 지금 기획대로라면 숭례문 방화 사건의 다층성, 쓰레기처리장 기능 이상과 도시, 미디어플랫폼 내 편향, 새마을운동과 마을공동체, 한국GM 철수설과 노동자, 반환공여구역을 둘러싼 국가와 자본의 동상이몽 등에 대한 연구로 이어질 것이다. 이 중 몇몇은 10월 비판사회학대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인프라 연구의 가능성과 우리 모임의 역량, 그리고 비판사회학회 소모임 지원사업의 영향이 하나의 연쇄로 이어지는 셈이다. 인프라스트럭처에 휘말린, 혹은 휘말리고 싶은 연구자라면 누구든 우리의 연쇄에 함께하길 바란다.
소준철 | 전남대 역사문화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