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인사말
비판사회학회 회원 선생님들께 인사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2023년 한 해 동안 비판사회학회를 이끌어갈 책임을 맡게 된 신임회장 서동진입니다. 비판사회학회가 한국 사회과학계에 차지하는 자부심 넘치는 위상은 회원 여러분들 모두가 잘 아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1980년대 비판적 사회과학이 약진하던 시대에 자신의 출현을 알린 비판사회학회의 전신 한국산업사회연구회(산사연)는, 지금의 비판사회학회로 이름을 바꾸어 활동하여 왔습니다. 산사연이 출범하던 때는 한국자본주의가 역사적 위기에 처한 시점이자 그 자본주의를 지탱하고 이끌었던 국가권력이 한계에 봉착했던 때였습니다. 비판적인 사회학자들은 그 전환의 시대가 뿜어내는 갈등과 전환의 낌새를 손쉽게 포착하고 또 그에 대응할 수 있는 학문적인 행운을 누릴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대학 입학 자율화와 더불어 확대된 대학교육의 공간은 비판사회학에 또한 기회를 제공하여주기도 하였습니다. 학술적인 활동을 ‘운동’의 관점에서 조직하고 전개한 비판적 사회과학자들은 금지되었던 비판적 사회이론을 제도 속에 도입하고 타기 시 되던 주제와 쟁점들을 사회과학이 해결하여야 할 문제로 삼는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이는 비판사회학회가 계승할 뜻깊은 유산일 것입니다.
비판적인 사회과학의 실천이 융성하던 시기가 종결되었다는 것은 저희 모두가 공감하는 일인 듯 싶습니다. 더 남은 것이 무엇일까 싶으리만치 대학교육을 초토화시킨 시장중심의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고, 현 정부는 자신의 3대 개혁 과제의 하나로 교육 개혁을 꼽고 있습니다. 사회학과의 존립 자체가 현안이 되어 있는 마당에 사회학의 비판적 노선을 고집하려는 것은 사치스런 일처럼 보일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비판사회학를 만들고 이끌던 선생님들은 어느새 정년퇴임을 하게 되었고, 비판사회학은 이제 향수와 기억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더해 사회(과)학의 위기는 비판사회학회 내부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사회(적인 것)의 재현”의 위기는 모든 사회과학자들을 괴롭혀 온 문제일 것입니다. 지난 세대의 사회학자들이 상투적인 ‘사회 문제’들을 다루면서 곧 진보적인 이론적 실천을 하고 있다고 자임하는 윤리적 주관주의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다음 세대의 실망이나, 자신들이 직면한 세부적인 쟁점과 소재들에 대한 주관적 경험을 토로하는 데 매몰되어 체계와 구조의 문제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전 세대의 걱정은, 사회적인 것의 재현의 위기가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인지도 모릅니다.
비판사회학회를 이끌어 갈 1년간의 책무를 생각하며, 신임회장으로 제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도 바로 그러한 점이었습니다. 개별적인 사회적 현상과 정체성, 장소, 시간들에 천착하며 그것을 직관적으로 보이지 않는 사회의 징후이자 알레고리로 이해하고 분석하려는 새로운 사회학 연구자들의 고심을 헤아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그것이 자신을 끈질기게 반복하는 사회구조가 자신을 실현하는 새로운 방식인 것은 아닌지 따져 묻는 비판사회학의 끈질긴 질문과 접합하는 것을 잊지 않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저는 이것이 비판사회학의 회원들 간의 비판적인 대화의 출발점이며 또한 사회과학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비판사회학의 드문 역량을 보여주는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비판사회학회가 사회과학의 침울한 혼돈의 상태를 헤쳐 나가는 이론적 실천의 견인차가 되길 기대하면서 올 한 해의 활동을 수행하겠습니다. 이제 비판사회학회는 지난 수년 간 코로나 위기에서 비롯된 침체와 위축을 극복하고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펼칠 수 있을 것입니다. 올 한 해 비판사회학회가 지난 수년간 실천했던 성과들을 보다 내실 있게 이어감은 물론 이를 심도 있게 확장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여러 여건으로 저조했던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참여와 주도로 움직이는 비판사회학회의 기풍을 되살리고자 애쓸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운영위원회가 명실상부 비판사회학회의 기둥이 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전력하겠습니다. 대학의 제도 안팎에서 이뤄지는 ‘연구자’와 ‘활동가’들의 사회적 지식 생산의 역할에 유의하고 그것으로부터 배우고 연대하는 활동에도 역시 주의를 기울일 것입니다. 비판사회학회의 회원들의 공동 연구의 의욕을 적극 수렴하고 학회가 이를 어떻게 장려하고 지원할 수 있을지 역시 챙기겠습니다. 또한 고식적인 학술 활동에 연연하지 않고 다양한 교류와 대화의 플랫폼을 통해 회원들 간의 배움과 토론이 이뤄질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활동들이 비판사회학회가 학술적 실천의 자장 안에서 감당해야 할 역할과 책임을 견실하게 수행하기 위한 것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선후배 연구자들의 관심과 참여 없이 이 모든 전망과 계획은 부질없는 것입니다. 부디 한 해 비판사회학회와 함께 하는 다양한 자리에서 회원 여러분을 뵙길 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지지와 개입, 신랄한 제안과 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